먹을거리-食道樂

진달래꽃쌈밥

noddle0610 2007. 4. 13. 01:00

 

 

 

쌈밥

             

    

   <사진 : 북한산의 봄, 외우(畏友) 제비 촬영, http://blog.daum.net/greenhouse1>

                                                 

   진달래는 김소월(金素月)의 시구(詩句)에 나오는 평안북도(平安北道) 영변(寧邊) 동대(東臺)의 약산(藥山) 진달래꽃이 유명하지만, 내 고향 강원도(江原道)를 관통(貫通)하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진달래꽃도 아름답고 탐스럽기로 유명하다.

함박송이처럼 더부룩하게 피어나 너무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워 보여, 봄철에 우리 고향 사람들은 그 꽃잎을 잔뜩 따다가 쌈을 싸서 먹곤 했다. 가마솥에 잘 쪄놓은 노란 색깔의 감자를 숟갈로 으깨어서 된장 발라 한 번이라도 진달래꽃쌈을 싸서 먹어 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상추쌈을 잘 안 먹는다고 한다. 열다섯 살에 무작정 상경(上京)하면서부터 지금껏 진달래꽃쌈을 먹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나 역시 불고기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상추쌈을 그다지 즐겨 먹지 않는 편이다.

꽁보리밥에 된장을 얹어 진달래꽃쌈을 싸서 먹거나, 흰 쌀밥에 고들빼기김치 절인 것을 척척 얹어 먹던 진달래꽃쌈밥 맛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평안북도 영변(寧邊) 지방은 오늘날 북한의 핵 시설(核施設)이 들어서는 바람에 온통 방사성 낙진(放射性落塵)에 의해 오염된 땅으로 지구촌(地球村) 전체에 널리 알려져 있다. 

나는 김소월 선생의 진달래꽃을 읽을 때마다 영변(寧邊) 원자력발전소(原子力發展所)와 그 곳에 있을 플루토늄(plutonium)의 추출 여부(抽出與否) 및 난마(亂麻)처럼 얽히고설킨 북핵(北核) 문제가 자꾸만 떠올라, 머리 속이 어질어질하고 가슴 가장자리가 미식미식 아파 오는 것을 느낀다.

상추쌈을 먹을 때마다 어린 시절에 시골집 툇마루 끄트머리에 걸터앉은 채 진달래꽃쌈을 허겁지겁 싸서 먹던 추억이 아련히 되살아나지만, 요즘 TV에서 황사 낙진(黃砂落塵) 관련 뉴스(news)를 연신 방송(放送)해대는 통에 이른바 낭만적 무드(mood)가 확 깨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냉혹한 현실세계는 우리한테서 낭만(浪漫)을 앗아가고 있다. 관서 팔경(關西八景)으로 이름 높던 영변(寧邊)의 진달래꽃을 예전의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image)로만 생각할 수 없게 만들고, 강원도 산골짜기에 핀 진달래꽃을  안심하고 아름 따다가 먹을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던 어린 시절에…….’라는 가사로 유명했던 맹인 가수 이용복의 노래 어린 시절은 이제 중늙은이들의 기억 속에만 희미하게 남아 있는 잊혀진 유행가(流行歌)가 되고 말았다. 

어디 그 뿐이랴. 이흥렬 작시(作詩), 이흥렬 작곡(作曲)의 바위 고개는 일절(一節)만 겨우 생각날 뿐 정작 진달래꽃을 꺾어 주던 연인(戀人)의 슬픈 사연이 담긴 2절과 3절의 노래말은 전혀 생각도 안 난다.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에 나오는 서정적 자아(自我)도 꽃을 한 아름 꺾어다가 임 앞에 산화(散花)하고, 이흥렬 선생의 가곡(歌曲) 바위고개에 나오는 연인들도 꽃을 꺾으며 임을 기다리고, 카수(歌手) 이용복의 노래말에 나오는 화자(話者)들도 진달래를 먹으며 자라는 것을 보면 진달래꽃은 생래적(生來的)으로 희생(犧牲)의 운명을 지닌 꽃인 성싶다.

진달래꽃을 한자(漢字)로 두견화(杜鵑花)라고 하는데 본디 그 어원(語源)을  따지고 보면 슬픈 희생의 이미지를 지닌 말 아니었던가. 


이 꽃이 한중(韓中) 두 나라에서 공(共)히 민중(民衆)의 사랑을 받은 것은 꽃말[화사(花詞)]에 얽힌 한(恨) 맺힌 사연(事緣)과 함께 화려하지 않은 서민적 소박미(素朴美)를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꽃이 아닌, 봄만 되면 우리 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꽃이라 친근감(親近感) 때문에 더욱 서민들의 사랑을 널리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흔한 꽃이라 생것(生-)으로 따 먹기도 하고, 꽃쌈을 싸서 먹기도 하고, 화전(花煎)을 부쳐 먹기도 하고, 진달래 술즉(卽) 두견주(杜鵑酒)를 담가 먹기도 하였지만, 이는 결코 진달래꽃을 하찮게 여겨 그런 것이 아니다. 옛 사람들은 먹는 것을 하찮게 여기면 죄(罪)받는다고 생각하였다. 한 알의 쌀을 얻을 때까지 여든여덟 번의 정성을 들인다 해서 그 이름을 한자(漢字)로 ‘米’라 붙이지 않았던가?  그만큼 정성을 들여 얻은 쌀알이기에 만일 밥알 한 톨이라도 땅바닥에 흘리면 천벌(天罰)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진달래꽃을 하찮게 여긴 것이 아니라 너무너무 사랑하였기에, 많은 시가(詩歌) 속에 진달래꽃 또는 두견화(杜鵑花)가 제재(題材)로 등장하여 상찬(賞讚)의 대상이 되었고, 전설(傳說)이나 일화(逸話) 속에서 애틋한 사연(事緣)이나 애련미(哀憐美)를 지닌 상관물(相關物)로서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도회지(都會地) 생활을 반세기(半世紀) 가까이 하였지만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진달래를 소재로 한 화전(花煎)이나 두견주(杜鵑酒)를 얼마든지 얻어먹을 수 있다. 그러나 진달래꽃쌈밥은 얻어먹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어찌 서울에 가만히 앉아 방금 산에서 꺾어 온 싱싱한 진달래꽃으로 쌈을 싸서 먹을 수 있으랴.

  예전에 산골에서 살 때에는 진달래꽃쌈 먹기가 꽃전[花煎]이나 진달래로 담근 술 얻어먹기보다 훨씬 손쉬웠지만, 지금은 정반대(正反對)가 되어 버렸다.

  또 하나 진달래꽃쌈밥을 구경하기 힘들어진 까닭은 이러하다. 즉(卽) 강원도 백두대간(白頭大幹) 기슭의 고원지대(高原地帶)에 자생(自生)하는 진달래는 대부분 꽃잎이 함박송이처럼 탐스럽고 더부룩하여 쌈을 싸서 먹기가 아주 쉬웠는데, 지구(地球) 날씨의 온난화(溫暖化) 때문인지 요즘은 함박송이 같이 풍성한 진달래를 구경하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꽃잎들이 너무 빈약하여 언감생심(焉敢生心)에 그 것으로 쌈을 싸 먹을 마음조차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그 동안 비닐하우스(vinyl house) 속에서 재배한 상추나 들깻잎으로만 쌈을 싸서 먹던 도시인(都市人)들은 모처럼 어렵사리 꽃잎이 풍성한 진달래꽃을 얻게 되어도 요즘 중국 등지(中國等地)에서 불어 오는 황사(黃砂) 낙진(落塵) 때문에 막상 쌈을 싸 먹을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새 봄이 돌아오니 각종 신문과 잡지 그리고 인터넷 상(上)에 심심찮게 서울 인근(隣近)의 야산(野山)에 핀 진달래꽃 사진들이 뜬다. 고화질(高畵質) 사진이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꽃들은 내가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던 어린 시절의 그 풍성하게 아름답던 진달래꽃들이 아니다. 임을 기다리며 바위고개 언덕 너머에 여기저기 핀 진달래를 한 아름 꺾어 들고 가슴 졸이던 머슴 칠복(七福)이 녀석의 그 풍성한 꽃이 아니다. 모름지기 진달래꽃은 먹음직스러워 보여야 아름답게 보이는 법인데, 빈혈(貧血)에 걸린 듯 너무 빈약(貧弱)하게만 보이니 말이다.


김소월(金素月)의 시구(詩句)에 나오는 약산(藥山) 진달래꽃은 비록 방사능(放射能)에 오염(汚染)되긴 했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우리라. 그러나 어쩌랴. 다시는 예전의 순수한 감정으로 돌아가서 영변(寧邊)의 그 진달래꽃을 떠올릴 수 없게 된 것을!…… 

요즘 소월(素月)의 진달래꽃을 읽을 때 떠올리는 꽃의 이미지(image)는 여전히 아름답긴 하지만 마치 훼절(毁折)한 여인을 대하는 느낌이라서 자못 찜찜하다. 


방사성(放射性) 낙진(落塵)이나 황사(黃砂)에 의해 앞으로 더 이상 지상(地上)의 꽃들이 오염되거나 훼절한 여인처럼 보이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음 놓고 감상하고, 즐기고, 식용(食用)이 될 수 있는 꽃들은 죄다 안심하고 따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어서 빨리 오기 바란다.


오늘따라 유난히 꽃전[花煎]보다도 두견주보다도 진달래꽃쌈밥이 먹고 싶다. 

오늘은 색다르게 진달래꽃잎에다가 찬밥덩이를 한 술 얹고 거기에 희고 깨끗한 새우젓 몇 마리 곁들여 한 입 가득 넣은 채 아직은 든든한 나의 치아(齒牙)로 삼빡삼빡하게 먹고 싶다. 

, 그런데 어디에 가서 함박송이처럼 탐스럽게 핀 진달래꽃을 한 아름 가득히 따온다지?……

 

2007   4을 맞이하여

 

박   노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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