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에세이

시월(十月)을 떠나보내며

noddle0610 2010. 10. 31. 23:45

 

 

 

()내며

 

     

 

 

 

 

 

 

 

 

 

 

 

 

 

 

 

 

 

 

  

 

 

시월 달이 저문다. 저 만경(萬頃) 들녘에 황금물결이 춤추던 추억을 뒤로 한 채 바야흐로 시월이 가고 있다.

 

  어떤 이는 오월(五月)을 가리켜 계절의 여왕이라 일컫기도 했지만, 삼천리강산(三千里江山) 백두대간(白頭大幹)이 온통 울긋불긋 화려하게 물드는 시월 달이야말로 일 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時節)이 아닐까. 봄철의 꽃은 모든 산과 모든 식물들에 걸쳐서 하나도 빼지 않고 반드시 피어나도록 마련되어 있지 않지만, 음력 추구월(秋九月)의 알록달록한 단풍(丹楓)은 모든 풀과 나무를 죄다 적색(赤色) 아니면 황색(黃色)이나 갈색(褐色)으로 곱디곱게 물들여 버리니까 말이다.

 

  꽃은 아무래도 꽃잎이 지기 직전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고, 달은 바야흐로 만월(滿月) 이지러지기 직전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듯이, 대자연(大自然)의 경치 중 백미(白眉)는 뭐니 뭐니 해도 이른 봄부터 우거지기 시작해 여름 내내 무성했던 녹음(綠陰)들이 시월에 접어들면서 짙붉게 물들었다가 한 잎 두 잎 낙엽(落葉)이 지기 직전까지의 만산홍엽(滿山紅葉)들이라 하겠다.

 

  동짓달이 되면 화려하기 그지없던 단풍잎들은 누런 색깔 일색(一色)으로 변하면서 결국은 마른 잎이 되어 땅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고, 마침내 눈서리가 섞어 칠 즈음에 이르러서는 우리네 인간들에게 어느 시인이 절창(絶唱)했던 저 폴란드 망명정부(亡命政府)의 지폐(紙幣)만큼이나 형편없는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저런 까닭으로 해서 사람들은 사계절 가운데서도 가장 화려한 가을철을 사랑하기에시월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가을을 보내기 싫어 몹시들 애를 태우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가는 세월을 이 세상에서 조화옹(造化翁)을 제외한 어느 누가 감히 붙잡을 수 있으랴.

 

  과학(科學)과 순리(順理)를 절대로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철인(哲人파스칼(Pascal 1623~1662) 선생(先生)의 말마따나 생각하는 갈대인 우리네 인간들은 해마다 시월의 마지막 시간들을 대개 감상적(感傷的)으로 보내곤 한다.

 

  그 일례(一例)로 해마다 시월의 마지막 날엔 온종일 라디오(Radio)나 티브이(TV)에서 우울하게 흘러나오는 노래가 가수 이용(李龍) 잊혀진 계절이다.

 

    

잊혀진 계절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박건호 작사 / 이범희 작곡>       

   

 

  내년 이맘때쯤이면 분명코 시월 달이 다시 찾아올 텐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올해 시월이 달력(calendar)에서 사라져 가는 것을 몹시 서글프게 생각한다.

  

  다만 평소에 생각이 짧은 편인 젊은이들은 곧 닥쳐올 동지섣달 추위가 싫어서 시월이 가는 것을 그렇게들 싫어하는 것이리라. 아마도 그들은 저 영국의 낭만파(浪漫派) 시인 셸리(Shelley 1792~1822) 서풍에 부치는 노래(Ode to the West Wind)의 마지막 대목에서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고 읊조렸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해마다 시월의 마지막 밤에 이용(李龍) () 잊혀진 계절을 애청(愛聽)하며 감상(感傷)에 젖어들곤 한다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미 숱한 풍상(風霜) 다 겪은 중노년층(中老年層)들이라고 한다.

 

  환갑(還甲) 진갑(進甲)을 진작 훌쩍 넘겨 버린 나 역시 근년(近年)엔 해마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 잊혀진 계절의 애상적(哀傷的)인 선율(旋律)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불면(不眠)의 밤을 맞곤 했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는 이치(理致)를 깨우치지 못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요즘에는 내가 어릴 때 우리 마을 노인들이 봄만 되면 가끔씩 노래하시던 민요(民謠)가 불현듯 생각날 때가 자주 있다.

 

    

  명사십리(明沙十里) 해당화(海棠花)

  꽃 진다고 설워 마라.

 

  명춘 삼월(明春三月)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려니와

 

  가련(可憐)하다 우리 인생(人生)

  한번 가면 아니 온다.

 

  

  내 고향은 물이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한 강원도 소양강(昭陽江) 상류 지방에 자리 잡고 있는데, 1970년대 초에 소양강 다목적 댐(dam)이 생기면서 고향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다.

  

  수몰(水沒)되기 이전만 해도 우리 동네를 에돌아 흐르던 소양강 자락 끄트머리에는 막장골이라는 경치 좋은 곳이 있었는데, 영어(英語) 에스(S)() 형태로 약() 십 리(十里) 정도에 걸쳐 굽이쳐 흐르던 강줄기를 따라 길게 백사장(白沙場)이 이어져 있었고, 그 백사장 가장자리에는 해당화(海棠花)가 늘비하게 자라서 해마다 봄만 되면 꽃을 피워 아주 볼만했었다. 그 해당화가 열매를 맺으면 우리 동네 아이들이 즐겨 따먹곤 했는데, 6.25 전쟁 직후(直後)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당시에 해당화 열매는 찔레, 칡뿌리진달래꽃송이, 송기(松肌), 산사(山査 : 아가위, 애광, 찔광) 열매개암, 아카시아(acacia)보리깜부기산딸기, 오디산수유(山茱萸) 따위와 더불어 아동들에게 아주 훌륭한 군것질감들이었다. 내 기억으로 당시 내가 씹었던 해당화 열매는 씹을수록 쫄깃쫄깃하면서 들큼하고도 제법 맛있었다. 그런데 그 막장골 백사장과 해당화 꽃들이 지금은 소양강 댐 속으로 함몰(陷沒)되어 버린 채 아스라이 기억 속에 잔상(殘像)으로만 남아 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어릴 적에 우리 동네 어르신들이 한 잔()의 술에 취하신 채 불콰한 얼굴로 읊조리시던 노래 명춘 삼월(明春三月) 봄이 오면 / 너는 다시 피려니와 / 가련(可憐)하다 우리 인생(人生) / 한번 가면 아니 온다던 구절은 당시에는 그 진정한 의미를 몰랐지만, 이제 내가 6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고 보니 그 노랫말의 의미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게 된다.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아 다시 오게 마련되어 있지만, 그건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나 해당하는 진리일 것이고, 나이 들어 노쇠(老衰)해진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가련(可憐)하다 우리 인생(人生) / 한번 가면 아니 온다는 대목을 곱씹노라면 내 감정도 금세 멜랑콜리(melancolie)해진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시월의 마지막 밤에 이용(李龍) ()잊혀진 계절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서 자주 듣던 전래 민요(傳來民謠) 명사십리 해당화 의 주제(主題)를 떠올리면서 나의 여생(餘生)에서 과연 내가 몇 번이나 더 단풍의 아름다움을 구경하다가 이 세상에서의 소풍(逍風)을 다 마치고 하늘나라로 돌아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 버릇이 생겼다.

 

  기상예보(氣象豫報)에 의하면 올해는 지구촌(地球村) 전체의 기상이변(氣象異變)이 심해져서 우리나라에도 예년(例年)보다 겨울 추위가 자주 기습적으로 찾아올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월의 마지막 밤을 떠나보내는 내 마음이 영 편찮다. 텔레비전 뉴스에 의하면 혈압이 높거나 심혈관 계통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은 추운 날씨가 매우 위험하므로 바깥나들이를 삼가라고 하니, 여러 해 전에 심근경색(心筋梗塞)으로 사경(死境)을 넘나든 적이 있는 나로서는 다가오는 겨울철이 진짜 달갑지 않다.

 

  그렇잖아도 이번 가을에는 서너 가지나 되는 나의 지병(持病) 때문에 몸이 너무 쇠약해져서 고향 선산(先山) 벌초(伐草) 모임에도 빠지고, 우리 동네 가까이 있는 하늘공원 억새 축제행사에도 여태껏 못 다녀왔다정녕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믿지만, 이번 가을에 들어와서는 각종 검사와 진료를 받느라 병원 출입하기에 시월 한 달을 바삐 보내다가 어언(於焉) 그믐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 어느새 시월 달이 저물고 있다. 저 만경(萬頃) 들녘에 황금물결이 춤추던 추억을 뒤로 한 채 바야흐로 시월이 저만치 가고 있는데, 올해 가을에 교외(郊外)에 단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는 나는 홀로 서재(書齋)에 앉아 시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다. 창문 밖 하늘을 그저 망연(茫然)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오늘 따라 하현(下弦)달이 구름에 가려져서인지 아예 보이지 않고 그 대신 구름 사이로 보이는 이름 모를 별 몇 개가 냉기(冷氣) 어린 빛으로 나를 굽어보고 있을 뿐이다.

 

 

2010 10 월 그믐날 밤에

 

     

   

 

 

 

 

 

 

 

 

 

 

 

 

 

 

 

 

 

 

 

 

 

 

 

  


 

막장골(幕帳谷) : 소양강 댐(昭陽江 dam)이 생기기 전인 1970년대 초반기까지만 해도 강원도(江原道) 양구군(楊口郡)과 인제군(麟蹄郡) 사이의 접경지대에 있던  상수내리(上水內里)하수내리(下水內里)  두 마을 사이에는 소양강 강물이 S() 형태로 마치 반도(半島)처럼 생긴 강기슭을 우회(迂廻)하여 하류(下流)에 소재해 있던  원리(院里) 마을을 향해 흘러갔는데, 반도(半島)처럼 생긴 강기슭의 상수내리 경내(境內)에는 10여개 미만의 가구(家口)만 모여 사는 난뿌리(蘭根洞 / 蘭根乎 : 일명 남뿌리)라는 동네가 자리 잡고 있었고, 난뿌리에 인접한 하수내리 쪽에는 막장골이라는 자그마한 동네가 자리하고 있었다.  막장골난뿌리보다도 더 인구(人口)가 적은 동네였지만, 우렁이가 살던 아담한 규모의 저수지(貯水池)도 있었고, 소규모의 전답(田畓)과 땅콩밭도 있었으며, 막장골의 절반에 가까운 면적에 걸쳐서 눈부시게 흰 백사장(白沙場)이 소양강 강줄기를 따라 흰색 비단폭처럼 길게 펼쳐져 있었다. 맑고 푸른 강물과 금빛이 반짝이는 넓고 긴 모래언덕, 백사장 가장자리에 피고지는 해당화(海棠花) 등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워서 해마다 봄가을이 돌아오기만 하면 인근(隣近)의 수내국민학교(水內國民學校) 수산국민학교(水山國民學校) 신남중학교(新南中學校) 학생들이 소풍지(逍風地)로 즐겨 찾던 곳이기도 하다.  이  막장골 백사장은 이웃 동네였던 어론리(於論里)오가탕(五佳湯 : 일명 五個湯 / 五溪湯)과 부평리(富坪里)의 도수암(道水岩)과 더불어 산수(山水)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으로 영서지방(嶺西地方) 일대(一帶)에 널리 알려져서,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글깨나 하는 선비들이 자주 찾아와 천렵(川獵)과 시회(詩會)를 했다고 한다.  한 폭(幅) 그림처럼 아름답던 막장골 백사장이 소양강 댐(昭陽江 dam)에 의해 저 멀리 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실향민(失鄕民)들의 가슴속에만 살아남아 있으니, 1970년대 당시(當時)에 산업화(山業化)에 의해 거의 강제적으로  상하수내리(上下水內里)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은 그곳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 때문에 노상 울적(鬱寂)해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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