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유록(交遊錄)

훈민정음 해례본 복간(復刊)에 관한 노들님의 글을 읽고서

noddle0610 2015. 10. 12. 06:53

 

 

 

 


    

보낸 사람 : 청계반산 김영욱(halfgom)

받는 사람 : 박노들(noddle)

보낸 날짜 : 2015 10 11일 일요일 07 13 04

  

 

  

 훈민정음 해례본 복간(復刊)에 관한 노들님의 글을 읽고서

 

어제의 가을비로 가을 가뭄이 약간 해소되는가 싶더니 이내 그치고 

바람이 일어 약간 차게 느껴지는 중추(仲秋)의 아침입니다


장문(長文)의 글을 읽고

 역시 한글의 제자원리(制字原理) 상형성(象形性)에 대해 

대학에서 한 학기 (學期) 수업을 받았지만

정말 이런 신묘한 제자원리로 만들어진 글이 지금으로부터 

거의 육백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원본을 복간한 해례본이 만들어졌다니 또한 기쁜 일이고

그것을 소장하는 기쁨을 누린다는 것은 

삼시 세끼 밥을 먹지 않아도 기쁜 일일  입니다.

 

 역시 한글를 가지고 삼십  성상(星霜)을 

청파골[靑坡洞]에서 가르치며 배우며 그렇게 살다가,


이렇게 조용한 동네로 솔거(率居)하여 살지만

하루도 책을 손에 놓은 적이 없는 서생(書生)입니다


이제는 책을 조금만 보아도 눈이 침침하고 그렇지만,

그동안 많은 서적을 구입하여 읽은 책들을 다시 읽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허나, 오는 세월과 가는 시간 앞에 나 역시 자꾸만 작아지는 연습을 하며

생활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간간이 보내 주시는 노들님의 글에 한편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 우물을 파며 일관되게 중심을 잡고 하루를 사는데

나는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그냥 내 육신을 맡기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몇 년만 있으면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초로(初老)의 중늙은이지만

마음만은 아직 청춘인 것과 같은 착각 속에 살고 있습니다.

 

노들님, 이제 우리는 생활에 대한 욕심은 내려 놓을 때가 되었고,  

노자(老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 하니 약간 서늘한 기운에

가을이 점점 익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 가을에 나는 무엇을 하며 이렇게 살아왔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요즘에도 인사동(仁寺洞)으로 화(), 목() 글씨 쓰러

봉담(峰潭)에서 왕복 네 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갔다 왔다 합니다.

 

글씨도 한 이십 년 쓰고 있지만

아직도 그 나물에 그 밥이지만,

그래도 붓을 놓지 않고, 먹을 갈고,

화선지(畵宣紙)에 그리는 지난(至難)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가을비에 함께 보내 온 음신(音信)을 잘 읽고 미진하지만 답글을 올립니다

 


    

 

2015년 10 11일 일요일 

청계반산 김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