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권(萬卷)의 장서(藏書)에 관한 노들님의 글을 읽고서
옛 선인(先人)들도 그 많은 전적(典籍)을 다 읽으려고
책을 모으고 사고 한 것이 아닌 바에야,
누워서 서가(書架)에 꼽힌 책 제목만 일별(一瞥)하여도
책 한 권 읽은 기분이 나는 것은
애서가(愛書家)의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도 책이라면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읽고 모으고 하였는데,
오래 된 월간지(月刊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에 다 처분하였습니다.
그 중에도 한 이십 년 모은 현대문학(現代文學) 잡지를
홧김에 내다 버린 것이 종내 마음에 걸립니다.
누가 거두어갈 사람이 없기는 하였지만,
이튿날 쓰레기장(-場)에 가니 벌써 수거(收去)하고 난 뒤였습니다.
정말 용돈을 줄여 모은 책이고,
책을 사게 되면 자연 책값의 부담 때문에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전철(電鐵)로 오고 가는 한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은 나의 독서 시간이고,
일터에서 쉬는 시간은 혼자서 책을 읽는 그런 시간이기에
어떤 날은 단행본 한 권 정도는 뚝딱 합니다.
집에 잠자리에 들 때는 흐뭇한 생각에 잠이 잘 옵니다.
나는 일찍이 동대문 대학천(大學川) 상가(商街) 도매상에서 책을 구입하곤 했는데,
일간지(日刊紙)의 서평(書評)을 읽고 한 주(週)에 한 번 꼴로 열 권 정도의 목록을 뽑아
그 다음 주 인사동(仁寺洞) 가는 길에 들려 한 보따리 들고 오는데,
한 이불 덮고 자는 이의 지청구를 듣기 싫어서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 그런 시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학교에 책을 가져다 놓고
심심히 한 두 권 가방에 넣어 집에 가져오곤 했지요.
그러다 일터를 마칠 때
고등학교 학생들이 볼 수 있는 전집류(全集類)와
제법 알토란 같은 책들을 학교 도서관에 기증을 하였습니다.
권수(卷數)로는 천여 권((千餘卷))이 될 것 같은데…….
내가 주로 사 모은 책은
중국문학, 한시 계통, 동양철학,
심리학, 여성학 쪽의 책이다 보니,
고등학생들에겐 다소 생경하겠지만
우선 수업을 하면서 내가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양 수업한다는 것이 자기 모순인 듯싶어
이리저리 애써 구(求)해 읽은 책들이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그리 책을 읽지 않은 그런 부류(部類)였지만
그 후 그 숱한 나날들을 책과 가까이 하고 살아왔기에
지금의 나의 생활은 나름대로 넉넉합니다.
사진으로 본 노들님의 장서(藏書)는 손때가 묻은 고서(古書)가 많이 보이는데,
글의 내용으로 봐서 우리가 소풍(消風) 온 이 세상을 언젠가는 마쳐야 할 것인데
그 전에 후학(後學)이나 또는 지인(知人)을 통해 장서를 넘겨주는 방법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도 아직 집에 상당량 분량의 장서가 있는데,
이것도 학교 도서관에 다 내어 줄 예정입니다.
물론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서가에 책을 뽑아 읽는 이를 위해
이 방법밖에 없는가 봅니다.
어제의 가을비로 오늘은 당(唐)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라는 시를 나직이 읊조릴만합니다.

2015년 10월 12일 월요일
청계반산 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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