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천(佛光川) 왜가리
왜가리가 개천가에 오면
어떤 땐 반갑고
어떤 땐 꼴도 보기 싫다.
왜가리가 개천가에 오면
그날이나 그 다음날
십중팔구(十中八九)는
비가 오기 때문에
단 한 방울이라도
비가 오기 때문에
어떤 땐 반갑고
어떤 땐 꼴도 보기 싫다.
오랜 가뭄 끝이나
무더위가 극심하거나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릴 때
왜가리가 개천가에 오면
너무 반갑다.
그날이나 그 다음날
비가 한 방울이라도
내리기 때문이다.
어느 먼 곳에서
찾아왔는지는 모르지만
개천가를 오명 가명 하는
왜가리는 마치
하느님이 보내신
전령병(傳令兵) 같다.
오뉴월 지루한 장마 끝이나
칠팔월의 태풍(颱風) 끝머리에
너무 지치고 힘들어 있을 때
왜가리가 개천가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런 날은 정말
왜가리 꼴도 보기 싫다.
아직 끝나지 않은
궂은비 소식,
얄궂은 날씨 소식 따위를
또 알리려 날아온 게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어느 먼 곳에서
찾아왔는지는 모르지만
개천가를 어슬렁거리는
저 왜가리는 마치
하느님이 우리들한테
조심하라고 보내신
전령사(傳令使) 같다.
어떤 땐 반갑고
어떤 땐 얄미운
왜가리가
오뉴월 폭염 끝에
찾아오거나
칠팔월 폭풍우 끝에
찾아오면,
기쁜 징조(徵兆)
나쁜 조짐(兆朕) 때문에
웃기도 하고
짜증을 낼 때도 있지만,
남들보다 먼저
천기(天氣)를 알려 줘서
개천을 찾아주는
왜가리가
이즈음엔 고맙다.
내가 살고 있는
도회지(都會地) 한복판에
개울물이 흐르게 하고,
그 개울가에
왜가리를 보내
대자연(大自然)의 섭리(攝理)를
일깨워 주신 하느님께
때때로 경외감(敬畏感)을 느낀다.
불광천(佛光川) 개울가를
매일매일 산책하다가
왜가리를 만나면
그 녀석이 언젠가부터
능청스러운 내 친구처럼
느껴진다.
우리 동네 불광천에
왜가리가 찾아오면
그날이나 그 다음날
열 가운데 아홉은
비가 꼭 내린다.
단 한 방울이라도
비를 몰고 오기 때문에
우리 동네를 찾아오는
왜가리는
천기(天氣)를 살짝 알려 주려 온
하느님 전령사(傳令使)가
정녕코 틀림없다.
2018년 6월 13 일 오시(午時)
불광천(佛光川)에서
박 노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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