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 집

시월[十月]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noddle0610 2018. 11. 1. 23:30



시월[十月]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 인생(人生)의 동짓달에 -











어제는 시월의 마지막 날.

 


몇 해 전만 해도 시월 그믐께를 당하면


더벅머리 카수[歌手] 이용(李龍)의 노래


잊혀진 계절을 즐겨 들으며


괜히 센티멘털(sentimental)한 척 하기도 했지만


이젠 그러지 않습니다.



이른바 센티(senti-)’한 척 하기엔 제가 어느새


나잇살을 제법 먹었나 보오이다.

 


몇 해 전부터인가


시월의 마지막 날이 지독히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딱 하룻밤만 지나가면 11월달이 된다는 게,


그 동짓달의 어감(語感)이 너무 싫었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이 어느새 동짓달에


접어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안에는 제 윗대 4대조(四代祖)이신


고조(高祖) 할아버님 이래(以來)


팔순(八旬)을 넘기고 살다가 돌아가신 분이


여태껏 한 분도 안 계십니다.



저 또한 네 분의 우리 할아버지들처럼


칠순(七旬)은 이미 넘어섰지만


팔십 수(八十壽)를 살다 갈 자신은


언감생심(焉敢生心)에 바라지도 않습니다.



서력기원(西曆紀元) 2006년 벽두(劈頭)


심근경색(心筋梗塞)으로 쓰러져


죽음 직전까지 가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더구나 자신이 없습니다.



심장(心臟)의 삼분지 이(三分之二)괴사(壞死)해서


겨우 나머지 심장으로 약물(藥物)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살얼음 밟듯이 살고 있는


현재의 저로서는


팔십 수(八十壽)까지 살다가 갈 자신은


정말 정말 없습니다.

 


제 고향 강원도에서 국민학교를 다닐 때


맨손으로 소양강(昭陽江)을 헤엄쳐 건널 만큼


심장이 튼튼했던 제가,



인제군(麟蹄郡)에 있는 신남중학교(新南中學校)를 다닐 때


이십여(二十餘) () 길이 넘는 오솔길을 이용해


서울 남산(南山)보다 더 높은 고개를 넘어


삼 년(三年) 동안 거뜬히 통학(通學)을 했을 만큼


폐활량(肺活量)이 컸던 제가,



이삼십(二三十) () 한창 시절에 강원도의 설악산과


경기도의 소요산, 천마산, 팔봉산, 관악산, 강화도 마니산을


평지(平地)처럼 누비고 다녔던 강심장(强心臟)의 제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건



젊은 시절에 매일 담배를 네 갑()


사십여(四十餘) 년 동안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줄기차게 꼬박꼬박 피워댄 탓이니,



이 모든 게 다 의지박약(意志薄弱)했던


저의 탓이요, 저의 큰 잘못이로소이다.



지나친 흡연(吸煙)과 독주(毒酒)에 대한


아주 지독한 사랑만 아니었다면


저희 4대조 통정대부(通政大夫) 할아버님 이래


팔십 수(八十壽)를 못 누리신 여러 할아버님들의


기록을 이 손주가 단연코 깰 수가 있었는데 말이옵니다.

 


지금 저는 남들 보기엔 신수(身手)가 아주 훤해 보이나


사실은 네 바퀴 달린 자동차도 못 탈 만큼


몸과 마음이 굉장히 약()해 빠져 있습니다.



십 년 전(十年前)에 마지막으로



강원도 선산(先山)에 성묘(省墓)를 다녀온 이래


여태껏 단 한 번도 고향 땅을 밟아 본 일이 없습니다.

 


이래저래 아직 죽지 못해 살고는 있으나


요즘 사는 재미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몸에 깃든 병() 때문에 벗님들과 만나


술도 양(-)껏 나누지 못하고


먹고 싶은 음식도 제약이 많아 맘껏 먹지도 못합니다. 

 


벌써부터 눈도 어둡고 귀도 잘 안 들리기 시작해


혹시 저를 아시는 분들을 길에서 마주치면 실수할까 봐


요새는 바깥 나들이도 두렵고


전화(電話) 받는 것도 두렵습니다.

 


이제는 카수[歌手] 이용(李龍)의 노래


잊혀진 계절 듣기 싫습니다.

 


그래도 예전에 하도 많이 들었던 노래인지라


노랫말 중에 가끔씩 떠오르는 구절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 중에 제게 공감이 가는 대목은


바로 다음 노랫말입니다.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요새는 미래(未來)에 대한 설레는 꿈은 사라진 대신


가끔 쓸데없는 공상(空想)을 자주 하곤 합니다.

 


요즘 제가 가끔 누리고 있는 소소(小小)한 즐거움을


앞으로 몇 해 동안이나 더 누릴 수 있을지


그게 자못 궁금합니다.

 


지난달에 저는 여느 때보다


부부동반(夫婦同伴) 나들이를 자주 했습니다.

 


제가 간혹 실수를 해도,



외출 중에 버스(Bus) 안이나 지하철(地下鐵) 안에서


갑자기 몸에 이상 증세가 발생해


부득이(不得已) 119 구급차(救急車)


신세를 지게 되는 경우에도



늘 침착하게 저를 이해해 주고


보살펴 주는 아내가 있기에



저는 아내와 함께 외출할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하고 든든합니다만,



과연 이 소소(小小)한 안도감(安堵感)과 즐거움을


앞으로 몇 해 동안 더 누릴 수 있을 건지


그게 자못 궁금합니다.

 


평생 동안 친구나 친인척(親姻戚) 여러분들,


직장(職場) 선후배 동료 여러분들의


사랑과 신세를 너무 많이 받아온 저인지라



그 은혜를 갚지도 못하고 병자(病者)가 된 이즈막에



저로서는 그분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도 


제 부실한 몸이 본의(本意) 아니게 말썽을 일으켜


또다시 폐()를 끼칠까 저어해서



요새는 의식적(意識的)으로


친지(親知)를 만나는 것은 자제하고



아내와 부부동반 외출을 자주해



제 마음속의 쓸쓸함을 애써 지우고


평정(平靜)을 얻곤 합니다.

 


고희(古稀)의 나이를 넘기면서부터


세월이 화살처럼 빨리 흘러간다는 것을


더욱 뼈아프게 실감(實感)한 저로서는



이다음에 제가 죽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나간 구월(九月)달부터 시월달에 이르기까지


아내와 함께 맛집 탐방(探訪)’


고궁(古宮) 및 공원(公園) 나들이는 물론이요,



개천가 산책과 영화(映畵) 관람 등()


그 어느 때보다 여기저기 부지런히 쏘다니면서


저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하였고,



심리적 힐링(Healing)의 효험을 소소(小小)하게나마


확실히 체득(體得)한 바 있습니다.

 


이번 가을에 들어와 제 집사람과 함께 본 영화는


안시성(安市城’), ‘물괴(物怪)’, ‘명당(明堂)’


사극(史劇) 세 편과


한국계(韓國系미국인 배우가 주인공(主人公)으로 나오는


할리우드(Hollywood)  영화 ‘셔치(seach)’ 따위인데,



내일 오후엔 ‘완벽한 타인(他人)’이란


국산(國産) 코미디(comedy) 영화를


아내와 함께 구경할 작정입니다.

 


며칠 전에는 저의 안사람과 함께


맹꽁이 전기차(電機車)’를 타고


저희 동네 옆에 있는 하늘공원에 올라가


청춘남녀(靑春男女)처럼 억새 축제를 즐기고



그 다음 날엔 평화공원에 가서


마포나루 새우젓축제를 구경하였습니다.

 


부실(不實)한 건강 때문에


고향 선산(先山)에도 못 가고


자동차도 못 타고


지하철도 장거리는 못 타고,



친지(親知)들과 만나


맘껏 먹고 마시며 즐기지도 못하는 등



정말 정말 사는 재미가 없지만,



요새는 늦게나마 크게 각성(覺醒)하여


제 인생의 동반자(同伴者)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을 일부러라도 마련해


소소(小小)한 즐거움과 평안을 추구하려고


무진(無盡) 애를 쓰며 살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자랑스러웠던 일들과


화려(華麗)했던 추억들,


지난날의 부끄러웠던 일들과


좌절의 기억 따위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서 말입니다.

 


오늘이 동짓달 첫날이 시작되는 날이라


여기저기서 낙엽(落葉)바람결에


스산하게 나부끼곤 하지만  


그래도 섣달 그믐께보다는


덜 슬프고 덜 절망적입니다.

  


섣달에 가서야 동짓달을 허송(虛送)한 걸


후회하지 않으려고



이번 한 달을 제 아내와 함께


더욱 알차게 보낼 작정입니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면서 말입니다.

 


앞으로 저의 생애에서


제 아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는 않을 겁니다.

 


몇 해 전부터인가


시월의 마지막 날이 지독히 싫어지기 시작했던 건


딱 하룻밤만 지나가면 어김없이 새로 시작되는


동짓달의 그 썰렁한 뉘앙스(nuance)


너무 싫었기 때문이지만,



내년 이맘때 시월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면


더 이상 쓸쓸한 표정을 짓거나


공연(空然)히 슬퍼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아직 섣달은 한 달이나 더 걸려야


찾아올 테니까요.

 


요즘 제가 아내와 함께 누리고 있는


소소(小小)한 즐거움들을 소중히 여기며,


오늘 현재(現在)에 감사하며,  


결코 지나간 일들에 얽매이지 않으렵니다.

 


아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미래(未來)


인생 말년(末年)에 대한 기우(杞憂)’ 때문에


내 인생에 얼마 안 남은 동짓달 한 달을


통째로 허비(虛費)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밤 제가 아직 잠들지 못하는 까닭은



시월이 저만치 물러가서도 아니요,


어느새 득달같이 동짓달이 찾아와서도 아니요,



내일 하루 종일 아내와 함께 보낼 일들에 대한


자그마한 저의 계획(計劃)과 설렘 때문입니다

 

 


2018 년 동짓달 초하룻날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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