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어 & 언어예절

수고하세요

noddle0610 2007. 2. 26. 00:20
 

  <1986109한글날 기념 교양강좌 원고>


수고하세요

 

                                                                     /  박   노   들  

 

 

 요즈음 학생들은 선생님과 헤어질 때,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말해야 할 것을 선생님, 수고하세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원래 이 말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쓰는 말이 아니라고 제가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또 바로잡아 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만, 잘 되지 않습니다.

 

 이 수고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잘못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年代) 이후부터입니다.

 

 본디 수고하라.”라는 말은 할머니나 나이 지긋하게 잡수신 아저씨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젊은 사람에게 친근하게 혹은 구수한 목소리로 던지는 인사말이었습니다.

 

 시장(市場)에서 콩나물을 사 들고 떠나면서 자기보다 나이 어린 콩나물 파는 이에게 그럼, 수고하시우.”라고 말하거나, 장작을 패는 손아래 젊은이에게 총각, 수고하는구려.”라고 말하곤 하던 것이 수고란 말을 가장 바르게 사용한 예(例)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수고란 말에 “~하세요.”란 잘 들어맞지 않는 말꼬리가 따라붙으면서 이 표현이 화자(話者)에게 존댓말이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학생들이 그런 우스꽝스러운 엉터리 존댓말을 남발(濫發)하는 동안 어른들은 성의(誠意) 있게 그런  표현을 고쳐 주지 않아, 결국은 수고하세요.”가 인사말 아닌 인사말로 점차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청소년 여러분!

 

 원래 수고라는 말은 일을 하느라 힘을 들이고 애를 쓴다.’는 뜻으로서 결코 인사말이 될 수가 없습니다. 즉(卽) 웃어른께 수고하세요.”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계속 일하세요.” 하는 의미가 되는 셈이니, 나이 어린 사람이 일을 하고 어른을 쉬게 해 드려야 마땅한 도리이거늘, 세상에 웃어른께 일이나 계속하라는 이 따위의 버르장머리 없는 인사말이 어디 있습니까?

 

 차라리 선생님, 제가 일을 도와 드려야 하는데 사정이 있어 먼저 가야 되니 어쩌지요? 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몇 마디 더 하는 것이 언어예절상(言語禮節上) 더 도리(道理)에 맞지 않을까요?

 

 그 말 몇 마디 더 하기가 힘이 들고 밑천이 더 들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수고하세요.”라고만 말해 버린다는 것은 동양 사회(東洋社會)의 전통적인 예의(禮儀)에는 어긋나는 것이지요.

 

 우리 나라에서는 과거에 수고라는 말 대신에 노고(勞苦)란 말을 더 많이 써 왔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境遇)에는 참으로 노고(勞苦)가 많았다.”라는 말은 사용해도 되지만, “노고(勞苦)하세요.”라는 말은 아예 어법(語法)에 맞지 않는 말이라 도저히 쓸 수 없는 말이니까 주의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이 노고(勞苦)란 한자어(漢字語)는 작별 인사말로는 전혀 쓸 수 없는 말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재미없고 딱딱한 저의 이야기를 듣느라고 참으로 노고(勞苦)가 많습니다. 하하!……

 

 여하간(如何間) 웃어른을 만났을 때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드려야 옳다면, 헤어질 때도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해야 옳을 것이니, 구태여 경위(涇渭)에 맞지 않는 인사를 하여 웃어른을 불쾌하게 해 드리지 맙시다.

 

 요즘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아무 일도 안 하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입에 발린 소리로 수고하세요!”라고 말하는가 하면, 별로 마음에서 우러나오지도 않는데 그저 건성으로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하면서, 막상 선생님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고개만 약간 까딱하고 가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은 선생님께 용무(用務)가 있어 찾아왔을 때도 아예 인사조차 생략한 채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저 오늘 ○○○하게 해 주세요!”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소위 인사성(人事性)이 없어서 그런 것이지요.

 

 아무리 용무가 급해도 웃어른께는 공손히 머리 숙여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부터 드리고 나서 찾아온 용건(用件)에 대해 말씀드려야 하며, 마무리 인사로 반드시안녕히 계세요!”라고 해야 소위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수고하세요.”는 본디 인사말도 아니고, 1970년대부터 부쩍부쩍 오용(誤用)되기 시작한 엉터리 인사말이니, 공연히 이 말을 남용하거나 별(別)생각 없이 건성건성 사용하여 어른들의 심기(心氣)를 불편하게 해 드리느라고 수고(^^*)하지 맙시다.

 

 여러분 모두 잘 알다시피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가 없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공연히 대인관계(對人關係)에서 특히 웃어른에게 조심성 없이 말 한 마디 잘못한 게 죄가 되어, 그로 인해 배워먹지 못했다느니 가정교육이 형편없어 그렇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을 필요가 어디 있으며, 괜스레 여러분의 모교(母校)와 부모님까지 욕되게 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앞으로 웃어른을 만나면 하루에 열 번이라도 공손히 머리 숙여 인사드리고, 또 정확하고 올바른 인사말을 사용하여 사랑받는 청소년이 됩시다.

          

1986 년 10 월 9 일

 

경기도 가평군 대성리 학생수련원 생활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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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薔薇 23, 1989.2.10, PP.76~78. 全文 揭載